조선업은 한 국가의 경제 성장과 군사력, 기술력을 가늠하는 주요 산업이자 도시의 운명을 좌우했던 핵심 산업입니다. 일본과 한국은 모두 20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조선업을 중추 산업으로 삼았고, 수많은 도시가 조선소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산업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조선소가 문을 닫고 쇠퇴한 도시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세보와 히로시마, 한국의 부산 영도를 중심으로 조선소 쇠퇴 이후 도시의 변화 양상과 대응 전략을 비교해 보고, 그 안에서 도시와 산업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겠습니다. 저는 아무리 조선소가 쇠퇴한다 하더라도 현시대에서도 꼭 필요한 산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세보의 쇠퇴: 해군 중심에서 조선업 도시로, 다시 침체로
사세보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해안 도시로, 19세기 후반 일본 제국 해군의 주요 기지로 지정되며 전략적 가치를 지닌 군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1900년대 초반에는 일본 해군 조선소가 들어서며 본격적인 조선업 도시로 성장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군함, 잠수함, 병참선 등의 주요 생산지로 기능했습니다. 전후에는 사세보중공업을 중심으로 상업 선박과 군용 선박을 병행 건조하며 지역 경제의 핵심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며 방위산업 예산이 삭감되고, 민간 선박 발주도 줄어들면서 사세보의 조선업 기반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는 일본 조선업 전체가 한국과 중국의 기술력, 가격 경쟁력에 밀려 구조조정을 겪게 되면서, 사세보중공업도 단계적 사업 축소와 인력 감축을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용이 줄어들고 청년층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났으며, 지역 내 협력업체들도 폐업 또는 업종 전환을 해야 했습니다.
사세보는 조선업 외에 눈에 띄는 대체 산업이 없었던 탓에 도시 전체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현재 사세보시는 조선소 부지를 활용해 관광산업, 테마파크(하우스텐보스) 개발, 해양스포츠 클러스터 조성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조업 중심 경제 구조의 공백을 완전히 메우지 못한 상황입니다. 고령화율은 35% 이상에 달하며, 도시 전반의 활력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처럼 사세보는 조선업 의존형 도시가 산업 구조를 다양화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영도의 변화: 산업 쇠퇴를 문화로 재해석한 도시재생 사례
한국 부산의 영도는 조선업의 성장과 쇠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영도는 일제강점기부터 조선업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1970~80년대 한진중공업이 대형 선박을 건조하면서 ‘한국 조선업의 심장’으로 불렸습니다. 이 시기에는 영도 주민 대부분이 조선업에 종사했으며, 협력업체와 장비 공급업체들도 줄줄이 들어서며 조선업 생태계를 구성했습니다. 한때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는 약 2만 명 이상이 근무할 정도로 산업 밀도가 높았고, 이로 인해 지역 부동산, 자영업, 교통 인프라까지 조선업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조선업 전반의 불황이 시작되면서, 영도조선소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한진중공업은 지속된 적자와 경영난으로 인해 2015년부터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2020년 이후에는 사실상 대형 선박 건조를 중단하며 조선소 기능이 급격히 축소되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퇴직하거나 타 지역으로 이주했고, 협력업체 대부분은 폐업하거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조선업 쇠퇴는 곧바로 지역 경제의 침체로 이어졌고, 일부 지역은 ‘도시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영도는 비교적 빠르게 도시재생 전략을 수립하고, 조선업 유산을 활용한 문화·관광 중심 도시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부산시는 ‘영도 혁신도시 프로젝트’를 통해 한진중공업 부지를 복합문화공간, 해양체험관, 예술공방 등으로 리모델링하고 있으며, 조선소의 골조나 크레인 등을 산업 유산으로 보존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흰여울문화마을’은 조선업 노동자들의 오래된 주거지를 활용한 관광 명소로 재탄생했으며, 카페거리, 예술전시, 도보여행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물론 관광산업이 기존 제조업만큼의 고용을 창출하긴 어렵지만, 영도는 조선업 쇠퇴 이후의 미래를 비교적 유연하게 수용하며 도시 정체성을 재정립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해양관광·디지털콘텐츠 산업 등과 결합하여 보다 지속 가능한 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닌 도시입니다.
히로시마: 조선업에서 정밀기계 산업으로의 전환 성공 사례
히로시마는 전통적으로 미쓰비시 중공업의 핵심 생산기지가 위치한 도시로, 군수산업과 조선업을 동시에 수행해 온 산업 중심 도시입니다. 특히 1920년대 이후 일본의 군비 확장 시기에 히로시마는 전함, 항공모함, 잠수함 등 대형 군함을 생산하는 조선소가 위치하며, 일본 조선업의 요충지 역할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쓰비시 히로시마 조선소는 민간 상선, 유조선, 벌크선 등으로 전환하여 일본 조선업 재건에 큰 기여를 했고, 1970~80년대에는 연간 수십 척의 대형 선박을 건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며 조선업은 점차 수익성이 악화됐고, 미쓰비시중공업은 히로시마 조선소의 조선 부문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대신, 보다 수익성이 높은 항공우주, 방위산업, 정밀기계, 산업 로봇 분야로 사업 축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조선소 인프라의 상당 부분은 정밀가공·자동화 생산라인으로 리모델링되었고, 해당 부지에는 첨단기술 기업들이 입주하며 산업 구조가 빠르게 개편됐습니다.
히로시마시는 이러한 민간기업의 움직임과 발맞춰 ‘히로시마 이노베이션 밸리’를 조성하고, 대학·연구기관·창업기업 간 협업을 통한 지역 산업 고도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청년 인재의 정주율도 높아졌고, 외국계 기업 유치, 스마트팩토리 기술 도입 등으로 도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히로시마는 조선업 쇠퇴를 단순한 산업 침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술 기반 제조업으로 재전환에 성공한 도시로 평가됩니다. 이는 구조조정 시기에 산업 다양화를 빠르게 추진하고, 지방정부-민간기업-연구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시 전체가 조선업 이외의 대안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변화였습니다.
조선업은 도시의 경제적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된 산업이었습니다. 사세보, 영도, 히로시마 세 도시 모두 조선소와 함께 성장했지만, 쇠퇴 이후의 대응 방식은 전혀 달랐습니다. 사세보는 대체 산업 부재로 침체를 맞았고, 영도는 문화재생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 중이며, 히로시마는 고부가 제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이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조선업 이후를 준비하지 못한 도시는 침체에 머물 수밖에 없고, 선제적 산업전환과 도시 정체성 재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조선소가 문을 닫는다고 도시도 문을 닫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조선업 도시들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각 나라의 지원도 필요하고 그 도시의 시민들도 주인의식 가지고 발전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