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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소리 듣는 선박 (생태,음향,산업적 응용)

by hhuya02 2025. 7. 19.

해양소리 듣는 선박

오늘날의 조선소는 기계, 소재, 디지털, 친환경 기술, 인공지능, 그리고 해양 생태계와 연결된 다양한 융합 기술을 포함하는 복합 산업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개념은 바로 ‘청각 기반 해양 관측’입니다. 즉, 선박이 이동하는 동안 바닷속의 다양한 소리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해양 생태계, 기후 변화, 지구 환경에 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확보하는 기술이 조선소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해양 소리 수집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선체 하부에 설치된 ‘하이드로폰(hydrophone)’이라는 수중 마이크입니다. 과거에는 군용 또는 심해탐사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활용되었지만, 최근에는 고래의 의사소통 탐지, 해저 지진파 분석, 선박 소음 저감, 심지어 해양 쓰레기 탐지에도 활용됩니다. 조선소는 하이드로폰이 최적의 위치에서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도록 설계에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듣는 선박’이라는 개념을 현실화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바다 생태모니터링과 수중 음향 기술, 조선업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해양 생태 모니터링: 바다는 소리로 숨 쉰다

우리가 육상에서는 주로 시각에 의존하여 정보를 수집한다면, 해양에서는 '청각'이 핵심입니다. 고래는 소리로 먼 거리의 동료와 의사소통하고, 돌고래는 초음파를 사용해 먹이와 장애물을 탐지합니다. 갑각류와 일부 어류는 저주파를 이용해 무리를 유지하거나 포식자의 접근을 감지합니다. 이처럼 바다는 사실상 '소리의 생태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은 육상 중심의 시각 관찰 방식에 익숙해 해양의 소리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지했습니다. 최근 들어 과학계와 조선업계가 협업하며 이 '수중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고래의 이동 경로가 달라지거나,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선박 소음이 해양 생물의 생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이어지면서, 소리 기반 생태 모니터링이 필수 기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이드로폰을 선박의 하부에 설치하면, 이동 중인 선박이 하나의 거대한 청음 장치가 됩니다. 이 하이드로폰은 수온, 염도, 수압 같은 물리 환경 속에서도 작동하며,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감지하고 기록합니다. 그 소리는 고래의 노랫소리일 수도 있고, 산호가 마찰하며 내는 미세한 소리,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파, 또는 인간 활동으로 인한 산업 소음일 수도 있습니다.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AI가 분석하면, 단순한 음성 파형을 넘어서 의미 있는 정보로 가공됩니다. 예를 들어, AI가 특정 고래 종의 주파수 패턴을 인식하면, 고래의 개체 수 변화나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저주파 소리는 지각 활동과 연관된 징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생태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재난예측이나 어장관리, 해양 자원 탐사까지 연계될 수 있는 가치 있는 데이터입니다.

또한 이러한 기술은 국제 협력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고래 보호 구역 설정이나 해양보호구역(MPA) 확대 논의에서, 실제 소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생물 분포 분석이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조선소에서 출발한 기술이 해양 보호의 국제 기준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중음향 기술: 선체가 마이크가 된다

수중에서 음파는 공기보다 훨씬 빠르게 전달됩니다. 그만큼 더 넓은 거리에서 더 다양한 소리를 수집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정밀한 해석을 위해 고도화된 센서 기술과 분석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하이드로폰은 소리를 단순히 녹음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수중 압력의 미세한 변화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며, 특정 대역의 소리만 감지하거나 다중 채널로 다양한 소리를 동시에 기록할 수 있습니다.

조선소는 하이드로폰 시스템을 설계할 때 선체 구조와 음향 반사, 소음 차폐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단순히 장비를 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체 전체가 일종의 ‘청음 장치’로 작동하도록 설계 최적화를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엔진룸과 가까운 위치는 기계 소음 간섭이 심하므로 피해야 하고, 선미 부근이나 물살 흐름이 비교적 안정적인 구역에 설치할 경우 더 선명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4~5개의 하이드로폰을 선체에 분산 설치하고, 이를 AI 기반 중앙 분석 시스템에 연결하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시간차와 방향성 분석을 통해 소리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3D 음향 데이터까지 생성 가능합니다. 이러한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위성 통신을 통해 클라우드로 전송되며, 육상 관제센터에서 분석되거나 글로벌 공유 네트워크에 등록되어 연구기관, 정부, 민간 기업들이 함께 활용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최신 기술은 '지능형 하이드로폰'을 개발 중입니다. 이는 현장에서 기본적인 분석(소리 분류, 노이즈 필터링 등)을 자체 처리하고, 의미 있는 이벤트만 클라우드로 전송하는 방식입니다. 이 기술은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데이터 트래픽을 효율화하며, 실시간 경보 체계에도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해저 지진 발생 시 선박이 이를 즉시 감지하고 관제센터에 위험 경보를 보낼 수 있습니다.

군사적 활용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하이드로폰은 비상 상황에서 잠수함 탐지, 수중 드론 활동 감시, 침투 감지 등에 쓰이며, 민간 선박과 군용 선박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선체는 더 이상 수동적인 구조물이 아닌, 바다를 읽고 듣는 ‘능동적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산업적 응용과 조선업의 확장 가능성

이 기술이 조선소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장비 하나 더 설치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설계, 생산, 유지보수, 브랜드 이미지, 수출 경쟁력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는 변화입니다. 친환경, 스마트, 데이터 중심 선박이 미래 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가운데, 선박이 해양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핵심 경쟁 요소가 됩니다.

실제 유럽연합은 선박 소음이 해양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ESG 평가 기준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일본과 노르웨이 일부 선박은 ‘저소음 인증’을 받은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조선소가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여 하이드로폰 기반 소음 분석과 저감 기술을 설계에 통합한다면, 글로벌 조선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기술은 단순한 데이터 수집이 아닌, ‘산업용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과도 직결됩니다. 수년간 축적된 해양 음향 데이터는 해양 자원 탐사, 항로 안전 분석, 선박 피로 진단, 기상 변화 예측 등 다양한 분야에 연계될 수 있습니다. 데이터 기반 선박관리(Predictive Maintenance), 수중 통신, 무인선박 통제 시스템에도 이 데이터가 사용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기술은 시민 교육과 해양 문화 콘텐츠에도 큰 파급력을 지닙니다. 청소년 교육에서 ‘해양 생물의 소리 듣기’는 자연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고, 시민 참여형 해양청음 프로젝트는 공공 데이터를 민간과 공유하며, 투명한 해양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술 분야에서는 이러한 음향 데이터를 활용해 해양 사운드 아트, 사운드 인포그래픽, VR 전시 등으로도 활용됩니다.

조선업은 이제 '배를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바다를 이해하고 설계하는 산업'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다를 바라보는 방식은 이제 달라지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한 깊은 바다의 이야기를, 이제는 ‘소리’로 듣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조선소가 있습니다. 선박의 하부에 설치된 작은 마이크 하나가, 고래의 속삭임부터 해저의 지진 신호까지 담아내며 바다와 인간 사이를 연결해 주는 다리가 됩니다.

‘해양 소리 수집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조선업이 해양 생태계와 데이터 산업, ESG 가치까지 품을 수 있는 미래를 보여줍니다. 선박은 더 이상 철과 엔진으로만 정의되지 않습니다. 이제 선체는 바다의 귀가 되고, 조선소는 그 귀를 설계하고 조율하는 곳이 됩니다.

바다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요해 보이는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생명과 변화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 소리를 제대로 듣고 기록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지금 조선소가 해야 할 새로운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