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은 해양 공간 전체를 무대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확장 중입니다. 특히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해양 스마트팜(Ocean Smart Farm)입니다. 바다 위에서 고정식 혹은 부유식 구조물을 활용해 수산물, 해조류, 염생식물 또는 농작물을 자동으로 재배하는 첨단 농업 시스템이 조선소의 기술력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조선소는 배만 만드는 곳이 아니라, 바다 위에서 농사를 짓는 산업 플랫폼을 건설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해양 스마트팜의 개념과 필요성, 구조와 기술 요소, 실제 해양 양식장과 해상 재배 시설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조선업이 이 흐름에 어떻게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해양 스마트팜의 개념과 필요성
해양 스마트팜은 단순한 양식장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기존의 양식장은 그물망을 설치하거나 연안에 시설을 고정하여 수산물을 키우는 방식이었으나, 해양 스마트팜은 IT 기술과 친환경 에너지, 자동화 설비, 데이터 기반 관제 시스템을 융합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해상 농장입니다. 이 구조물은 대부분 부유식 또는 반잠수식 모듈형 구조로 만들어지며, 내부에 센서, 제어 시스템, 발전설비, 양식시설, 재배공간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왜 해양에서 농업을 해야 할까요? 첫째,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육상 농지는 점점 줄어들고, 기후변화로 인해 생산 안정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해양은 70% 이상의 지구 면적을 차지하지만 여전히 활용률이 낮습니다. 둘째,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 산업이기도 합니다. 해양 스마트팜은 태양광, 풍력, 해수열 등으로 에너지를 자급하며, 폐수 재순환 시스템, 온실가스 저감 시스템까지 포함해 지속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셋째, 국가 해양 산업 전략과도 연결됩니다. 한국은 3면이 바다인 해양국가이며, 조선업과 해양수산업의 고도화를 통해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양 스마트팜은 단순한 수산물 생산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식량 주권과 해양 산업 재편을 위한 새로운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중심에 조선소의 구조물 설계 및 건조 역량이 있습니다.
조선소가 만드는 해양 양식장과 해상 재배 시설
해양 스마트팜의 구조는 크게 어류 양식형 구조물, 해조류 또는 식물 재배형 온실 구조물, 그리고 복합형 플랫폼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들 구조물은 대부분 기존 선박 기술을 응용한 부유식 바지선 구조, 고정식 철골 구조물, 또는 반잠수식 해양 플랫폼 형태로 설계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 국내 한 조선소에서는 지자체와 협력해 해상 수경재배 온실을 개발했습니다. 이 시설은 태양광 패널로 자체 전기를 생산하고, 바닷물을 여과해 담수화한 후 수경재배 시스템으로 식물을 기릅니다. 온실 내부의 온도, 습도, 염도는 센서와 인공지능 시스템이 자동 제어하며, 외부와 통신해 이상 상태가 감지되면 관리자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구조입니다. 이 시설은 바다 위에 고정되거나 반잠수식으로 설치되어 기상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류 양식용 스마트팜 플랫폼은 더욱 복잡한 설계를 요구합니다. 내부에는 다중 생육 탱크, 수질 모니터링 센서, 생체 인식 기반 자동 급이 시스템, 잔반 제거 드론, 수중 카메라, 무선 통신망이 갖춰져 있으며, 이 모든 시스템을 통합 제어하는 중앙 관제실이 함께 설치됩니다. 조선소는 이런 시설을 모듈 형태로 제작한 후 현장 해역으로 운반해 조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업 특유의 정밀 설계와 용접, 해상 시운전, 방수·방염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중국, 노르웨이, 일본 등 해양국가들은 이 구조물을 앞다퉈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멀티 팜 플랫폼, 즉 양식, 재배, 숙박, 에너지 생산, 교육 기능을 갖춘 ‘해양 복합산업기지’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모든 기반에는 조선소의 해양플랜트 제작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습니다.
모듈화 기술과 지속가능한 조선업의 미래
조선소가 해양 스마트팜 산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모듈화 건조 기술과 구조물 시공 능력 덕분입니다. 조선소는 수만 개의 부품을 정밀하게 조립하여 선박이나 해양플랜트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으며, 이 기술은 표준화된 해양팜 구조물의 대량 생산과 글로벌 수출에도 매우 적합합니다.
예를 들어, 바다 위에 설치되는 온실 플랫폼은 사이클론 하중, 염분 부식, 침수, 기계 진동 등에 노출되며, 일반적인 건설사가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소는 이미 FPSO(부유식 생산저장설비), 해양풍력 하부구조물, LNG 벙커링 바지선 등을 건조해온 만큼, 고내구성 해상 인프라 설계와 시공에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소는 최근 ESG 전략에 따라 비선박 사업 다각화를 추진 중이며, 해양 스마트팜은 이 방향성과도 잘 맞습니다. - 탄소중립 기술 접목 - 친환경 자원 재활용 - 지속가능한 생산 기반 - 지역 일자리 창출
뿐만 아니라, 정부도 해양 스마트팜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2030 해양바이오 비전'을 통해, 해양 농업과 조선업의 융합 생태계 조성을 추진 중이며, 국책 R&D 과제로도 해양 스마트팜 모듈 개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민간 조선소들은 이 흐름에 맞춰 스마트 구조물 제작 라인, 해양팜 전문 자회사 설립, 국내외 해양 테스트베드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조선업은 더 이상 '수출 위주의 배 건조 산업'이 아닙니다. 이제는 미래 기후에 대응하는 글로벌 해양 인프라 산업의 주역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바로 해양 스마트팜이 있습니다.
해양 스마트팜은 단순한 농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선소의 기술력, 기후위기 대응, 자원 순환, 식량 안보, ESG 전략이 모두 만나는 융합의 장입니다. 조선업은 이제 금속을 자르고 용접하는 산업에서 벗어나, 바다 위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플랫폼 구축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해양 공간은 단지 항로가 아니라, 생산과 순환, 생존과 혁신의 공간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조선소, 스타트업, 수산업, 농업 기술 기업들이 손잡고 해양 스마트팜을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할 때입니다. 조선업의 미래는 선박 건조도 중요하지만 바다 전체를 디자인하고 이용하는 것에 있습니다.